[낙원의 화가] 고갱
폴 고갱
“여자는 자유를 원한다. 그것은 여자들의 권리다.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결코 남자가 아니다.
자기의 자랑을 배꼽 밑에서 찾지 않게 되었을 때 여자는 자유가 된다”
- 고갱 -
안녕하세요.
타오월드 회원 여러분.
돌아온 에디터 삼사라입니다.
여태까지 많은 문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왔는데요.
오늘은 분야를 바꿔 화가 분을 만나볼 거예요.
주인공은 바로 폴 고갱.
프랑스 출신의 후기 인상파 화가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이번 화가 편에서는 화풍과 성생활을 같이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네요.
그럼 바로 떠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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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폴 고갱씨. 연락 드렸는데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실 이야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폴 고갱: 이야기야 많죠. 그림 쪽이든, 성 쪽이든 둘 다 제 전공이거든요.
Q. 복수전공이시군요.^^ 먼저 고갱 씨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데요. 화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성장 배경은 어떠셨나요?
폴 고갱: 저는 혼혈이에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4분의 1은 페루 피가 섞였죠. 어린 시절은 리마라는 페루의 지방에서 보냈고요.
남미에서는 벌거벗고 사는 사람이 많다보니, 어릴 때만 하더라도 전 다들 이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죠.
17세가 되던 해, 그러니까 1855년. 저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되돌아가 선원이 되기로 했어요. 세계 탐험을 꿈꿨지만, 6년 만에 배에서 내려 주식중매인이 되었죠. 하지만 파리의 증권거래소도 망하자, 남은 인생을 그림 그리기에 바치겠다고 결심했어요.
고갱과 그의 부인(메트 소피에 가아즈)
Q. 처음부터 전업화가는 아니셨군요. 반 고흐 씨와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폴 고갱: 피사로, 세잔느, 반 고흐 등 여러 화가들과 친분이 있었죠. 고흐와는 두 달 조금 넘게 함께 일한 적이 있었지만, 성격이 맞진 않았네요.
전 뭐랄까, 서구 문명과는 맞지 않았어요. 전통적인 회화처럼 화면을 충실히 재구성하는 것도 뭔가 답답했죠.
저는 마음속의 풍경을 투영하면서, 돈은 안 되도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리는 게 좋았어요.
물론 그림 생활 중 섹스는 빠질 수 없는 요소였고요.
Q. 고갱 씨의 성생활은 어떠셨나요?
폴 고갱: 증권거래소에 사표를 내고 화가로서의 생을 선언했을 때, 아내와의 관계는 틀어지게됐죠. 저는 타히티에 건너가 그림을 줄곧 그리면서도 아내가 찾아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녀는 끝내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대신 저는 그림을 그리며 많은 여자들을 만났어요. 제가 머물던 타히티 지방엔 밤마다 다른 여자들을 집에 부르는 풍습이 있었거든요. 그림을 그리기 힘들 정도로 여자들이 넘쳐났기에 저는 수많은 모델을 앞에 세우고 작품을 그려냈죠.
그중 갓 10대에 접어든 테프라는 제 작품의 모델이자 아내가 되었죠. 그녀가 악령을 겁내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유령이 그녀를 지켜본다>는 작품도 탄생했고요.
<유령이 그녀를 지켜본다>
Q. 그럼 두 번째 부인과 관계가 쭉 지속됐나요?
폴 고갱: 아니요. 1893년, 저는 임신한 테프라를 남겨두고 프랑스로 되돌아갔어요. 전 애인이었던 재봉사 쥘리엣 위에가 있었거든요. 그녀와 부부관계를 지속하면서… 저는 안나와도 교제를 시작했어요. 안나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혼혈이었고요.
Q. 인기가 많으셨나봐요.^^ 끌렸던 이성관이 따로 있었나요?
폴 고갱: 저는 많은 여성들과 만났지만, 살림을 차렸던 여자는 대부분 어렸던 공통점이 있네요. 테프라도 안나도 10대 초반이었고, 또 다시 부부의 연을 맺은 파프라 역시 14세였죠.
Q. 왜 자꾸 부인이 바뀌었을까요?
폴 고갱: 글쎄요. 아무래도 채워질 듯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아닐까요? 처음엔 단순한 만남과 이별이었는데, 어느 새 일상이 되더라고요.
제겐 매독이라는 성병까지 있었지만, 도저히 섹스를 끊을 순 없었답니다. 두 다리에 고름이 흐르는 상처가 있었음에도, 눈감아줄 수 있는 원주민만 있다면 전혀 문제될 것 없었죠.
제게 여자란 작품 속 모델이거나, 섹스의 대상이었어요.
"널 그려야겠군" 한 마디면 됐으니까요.
<모자를 쓴 자화상>
Q.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섹스를 하는 건 죄일까요, 자연스러운 흐름일까요?
폴 고갱: 유럽에서는 사랑이 먼저고 섹스는 결과죠. 오세아니아에선 섹스가 먼저고 사랑이 결과예요. 어느 쪽이 옳은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분명한 건, 육체를 파는 행위 만큼은 죄라 생각해요.
제 인생을 쭉 돌이켜보면, 좀 더 건전하게 살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제 개성을 추구하느라, 그림과 성 모두 지나친 여정을 보냈지요.
이제 좀 쉬고 쉽군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고갱 씨는 이렇게 말했어요.
생을 통틀어 걸작을 만들어냈지만, ‘과연 이것이 걸작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이죠.
만약 걸작이 아니라면 그것은 걸작이라 믿는 헛된 생각에 불과하며, 살아온 삶 역시 부정하는 것이라 했어요.
알듯 모를 듯한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거 하나만큼은 느낄 수 있었어요.
고갱 씨가 삶에 대해 만족해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죠.
무엇이 후회롭지 않은 삶인지, 참된 삶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후회는 언제나 남기 마련이겠지만, 바른 기준과 신념을 가진다면 줄일 수 있겠죠?
타오월드 회원 여러분들도 건강과 가치, 지혜와 신념을 갖추어 보람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허망한 성관계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고요^^)
전 그럼 다음 인터뷰 상대를 부리나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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