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의] 반 고흐
반 고흐
“그림 그리는 일과 여자와 동침하는 것은 양립하지 않는다.
그런 짓을 하면 머리가 이상해져 버린다.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싶으면 여자하고 동침하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 반 고흐, 그림과 성에 대한 촌평 -
안녕하세요.
에디터 삼사라입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바로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특히 화가 중에서 이분 이름은 모를 수가 없죠.
자신의 귀를 자르고, 끝내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네덜란드의 거장.
맞습니다.
바로 반 고흐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지만, 같은 네덜란드 화가 중 렘브란트 빼고는 비교할 자가 없다고도 하는데요.
그의 일생과 성생활은 어땠는지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반 고흐
Q. 안녕하세요. 반 고흐 씨. 타오월드 삼사라 작가입니다. 불쑥 청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반 고흐: 반갑습니다.
Q. 반 고흐 씨는 사실 너무나 유명한 분이에요. 제가 사는 미래에서는 영화로도 개봉될 만큼 대단하지요. 그림은 어떤 계기로 그리게 된 거예요?
반 고흐: 저는 암울한 인생을 보냈어요. 불행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삶이었죠. 그런 제게 그림은 유일한 안식처였고 위안이었어요. 누구라도 절망 속에 갇혀 있다면 그림그리기나 다른 무언가를 했을 거라 생각하고요.
Q. 삶이 녹록지 않았군요.
반 고흐: 힘들었다면 제법 고생스런 삶이었죠. 저는 준데르트라는 곳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저는 16살 때부터 일했는데, 화상 구필상회, 헤이그 사무소, 종교인 등 여러 직업을 거쳤어요.
한때는 벨기에 탄광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지만, 교회 측과 다퉈서 파문당하고 말았죠.
문제는 생활이었어요. 그림이 도통 팔리질 않으니, 매번 동생(테오)에게 짐이 될 수밖에요.
Q. 맞아요. 화가는 그림이 팔려야 할텐데요. 그런데 고흐 씨는 훗날 엄청 유명해져요. 그림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요. 특히나 귀를 자른 화가로서는 너무나 괴짜스런 이미지가 있죠.
반 고흐: 귀 사건이 유명해지나보군요.
<자화상>, 반 고흐
Q. 두말할 것 없죠. 어떻게 된 일이예요?
반 고흐: 저는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동료 화가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어요. 특히나 고갱은 저랑 밥상머리도 같이 하기 싫을 정도로 고함을 질러댔는데, 우리 둘은 잔뜩 격양해서 서로 고래고래 말싸움을 벌이곤 했어요.
이렇게나 감정이 상하게 되면, 저는 유독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이게 되죠. 귀 사건은 그런 상황에다가 아를르라는 창녀에 대한 질투심이 더해진 결과예요. 귀를 잘라 봉투에 담아 건냈더니 너무나 놀라더라고요.
Q. 왜 귀를 잘라서 보여준 거예요?
반 고흐: 저도 잘 모르겠군요. 제 속에 타오르는 광기를 이기지 못한건데, 그 근원은 저도 설명이 어렵네요.
Q. 고흐 씨를 옆에서 보필해주는 여성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텐데요.
반 고흐: 제 삶은 한층 평화로워졌겠죠. 허나 화필은 잡지 않았을 것 겁니다. 물론 외롭고 척박한 삶보다는 반려자가 있었으면 좋았겠죠. 그런 생각은 종종 한답니다.
<해바라기>, 반 고흐
Q. 실연의 아픔이 크다고 들었어요.
반 고흐: 어쩌면 제 우울병의 징후는 하숙집 주인딸이었던 로이어의 실연에서부터 시작됐을거예요.
20대 초반, 저는 몇 달간 지속되던 짝사랑에서 벗어나고자 고백하고 말았죠. 그리곤 바로 거절당했죠.
이런 식의 급작스런 고백이 잘못된 방법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던 걸까요?
이후 여성도 똑같은 전개였어요. 남편을 잃은 사촌 케이 스트리케르 포스가 제 집에 묵고 있을 때, 결혼해달라고 했어요. 그녀는 대번에 떠나버렸고요.
저는 돈을 마련해 암스테르담인 그녀의 양친 집으로 찾아갔지만, 그녀는 절 보자마자 뛰쳐나갔어요. 그래도 포기가 안 돼서 저는 다시 그녀 집을 방문했죠. 그리고 석유램프 불에 한 손을 집어 넣은 채 기다렸어요. 끝내는 미친놈 취급을 당했고요.
Q. 후후 그랬군요. 연애가 쉬운 문제는 아니죠. 혼자 지내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요.
반 고흐: 그림을 그리면서 적적함을 달래긴 했죠. 그래도 성적 만족이 되질 않으니 답답하더라고요. 몇몇 창녀 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었어요. 그들 또한 가엾은 열외자이기에, 저를 거부하진 않았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사랑에 빠지게 됐죠.
Q. 누구랑요?
반 고흐: 마리아 호르니크라는 창녀였어요. 그녀를 신(자기의 것)이라 부를 만큼 사랑했었죠. 한참 뒤, 그녀의 본 모습을 알기 전까진 말이죠. 그녀가 술에 빠져 사는 음란하고 칠칠치 못한 여자란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요.
그러던 중 1884년, 제 인생에도 여자가 먼저 다가오는 일이 있었어요. 마르호트 베헤만. 41세의 올드미스인 그녀는 최후의 결혼 상대로 저를 낙점해두고 있었죠. 저도 딱히 그녀가 싫진 않았기에 결혼에 동의했어요.
결국엔 그녀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됐지만요.
Q. 다사다난한 삶을 보내셨네요. 사랑이야말로 삶의 행복이자 복인데, 반평생을 외롭게 지내오셨고요.
반 고흐: 제 운명이라 받아들여야죠.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더는 상처와 수치 뿐인 연애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에요.
물론 성적인 욕구를 참지 못하고 파리의 환락가나 매춘굴, 카페 여주인과 정사를 벌이긴 했지만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요. 삶이 망가지죠.
Q. 맞아요. 단순히 성적인 욕구만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건강만 해칠 뿐이죠. 고흐 씨가 올바른 성생활을 배웠다면 좋았을텐데요.
반 고흐: 정말 그런 방법이 존재할까요?
결국, 반 고흐는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아요.
몸도 마음도 병들어 있는데다 그를 돌봐줄 사람도 없거든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니 더욱 쓸쓸한 마음이 드는군요.
그간 타오월드에서 많은 상담과 교육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건, 오늘날 현대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에요
다들 각자의 사정, 문제, 환경으로 상처 받고 쓸쓸히 살아가더라고요.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과 병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성문제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않고, 부끄러워 하거나 참지 않고, 주어진 성생활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타오월드로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고민과 어려움을 소통해주세요.
바른 길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도하며…
이만 인사할게요.
다음 번엔 더욱 더 알찬 내용과 주제로 찾아뵙는 걸로.^^
그럼 안녕~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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